밖에서 물린 것과 안에서 물린 것
![](https://blog.kakaocdn.net/dn/to3Md/btrGYyVqnM3/rUuWqS45PiPFHSo6pWO0Xk/img.jpg)
아침에 일찍 잠에서 깨고 잠깐 딴짓을 하다 다시 잠이 들었다.
어깨에서 뭔가가 기어 다니는 촉감이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소름과 함께 손으로 어깨를 툭 쳤고 그 순간 피부를 물어버렸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나를 문 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어떤 것이 나를 물었을까?
고통은 꽤나 강했고 아직도 어깨가 주사에 맞은 듯이 얼얼하다.
모기를 제외하면 정말 오랜만에 물린 듯하다.
그래도 괜찮다.
오랜만에 느껴본 감각이라 무뎌진 신경이 살아난 느낌이다.
다만 나도 모르게 환상을 느낀다.
자꾸 이불이나 방바닥 어딘가에 나를 문 벌레가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어서 수시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꿈에서 귀신을 보거나 무서운 영상을 보고 나서는 자꾸 어두운 방 한 구석을 관찰하는 모양새다.
어렸을 적 기억이 난다.
반지하에 살았었는데 가족이 모두 한방에서 자고 있을 때 나 혼자 일어나서 잠든 가족들을 쳐다보며 문 옆에 딱 붙어서 혼자 울고 있던 기억.
어떤 공포감이 어린 나를 두렵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그 상황만 기억이 날 뿐이다.
신기하게도 다 자란 어느 순간부터 이 기억이 떠오르고 오늘도 생각이 났다.
나는 물린다는 것을 밖에서 물린 것과 안에서 물린 것으로 구분을 한다.
오늘처럼 벌레에 물린 것은 내 겉 피부를 물은 것이니 오늘 하루만 따끔할 뿐이다.
일주일이 지나면 잊힐 기억이다.
밖에서 물린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공포의 주체가 보이지 않거나 끔찍한 장면을 봤을 때의 감각과 기분을 느낀 체험은 정말 오래간다.
잊고 살아도 비슷한 현상에 놓이거나 혹은 뜬금없이 갑자기 다시 찾아온다.
나는 이것을 안에서 물렸다고 표현한다.
온몸이 놀라거나 감정적 상처를 느꼈을 때도 포함한다.
이 상처와 감각들은 아마도 내가 늙을 때까지 계속 찾아오지 않을까.
제주는 각종 야생의 벌레와 해충이 많은 청정자연이다.
그래서 오늘처럼 벌레에 물리는 일은 흔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방역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혹시 밖에서 물리더라도 안에서 물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나의 제주에서는 감정이 물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모든 일에 음과 양이 있듯이 항상 좋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마 서울살이에 너무 지쳤나 보다.
느껴진다.
잘 살아야지.
'내 활주로는 제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 뉴스레터 구상 (4) | 2022.07.12 |
---|---|
제주가게 도와줘 생각아 (4) | 2022.07.11 |
에어컨 바람과 제주 (4) | 2022.07.09 |
제주 곶자왈에서 보내온 소포 (4) | 2022.07.08 |
제주 여름휴가 숙소 예약하기 (4) | 2022.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