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블록처럼 항상 붙박이로 박혀있었던 낡은 종이상자가 사라지니 비로소 쓸쓸함이 다가왔다.
집 뒤의 관악산 수풀에서 매년 산고양이가 울었다.
산에서 태어난 어린 새끼들이 가끔 호기심을 지닌 채 산 밑으로 내려왔고, 매년 한 두 마리가 담을 올라와 문명과 야생의 선을 넘었다.
작은 산고양이는 산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길고양이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항상 그늘 밑 어둠 속으로 숨어 다녔다.
녀석은 그렇게 내가 사는 빌라의 작은 마당으로 스며들었고 이웃 아주머니가 먹이를 주며 보살피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집안에서 키우시던 아주머니는 어린 녀석에게 고양이 사료와 물을 주었다.
옆 건물에서 풀어 키우던 집고양이들은 창문이나 열린 현관문틈 사이로 자주 드나들었고 빌라 마당까지 놀러 와 밥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며 어린 산고양이와 동고동락을 했다.
근처의 어느 집이 이사를 갔고 늙고 병든 고양이를 버리고 갔다.
딱 봐도 눈에 힘이 빠진 회색빛 고양이는 아주머니가 데려와 빌라 현관 앞에서 머물게 해 주었다.
산고양이는 힘이 없어 거동도 못하는 늙은 고양이를 따르기 시작했고 옆에 꼭 붙어서 잠을 잤다.
짧지만 문 앞을 오고 가며 정이 들었을 때쯤 늙은 고양이는 눈을 감았다.
산고양이는 아직 어렸고 움직이지 않는 고양이에 기대며 안겨있었다.
따르던 고양이가 사라지자 산고양이는 주변의 돌아다니며 머무르는 고양이들과 장난치며 성장했다.
그렇게 잘 자라던 녀석은 사람들이 똘이라 불러주었다.
똘이는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했고 천식을 가지고 태어났었다.
가끔 숨을 잘 못 쉬었으며 일 년의 반은 호흡기 질환을 가지고 살아야 했다.
추운 겨울에는 내 방에서 잠도 재우고 했지만 같이 드나들던 고양이들이 사라지자 혼자서 집안으로 들어오기를 두려워했다.
1년이 가고 또 1년이 가고, 똘이를 매번 빌라 앞 현관 작은 박스에서 보게 된지 5년이 되었다.
이번 여름부터 몸이 점점 말라가더니 음식도 잘 소화하지 못했고 어두운 빌라 계단 밑으로 들어가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았다.
기력이 없는지 항상 잠만 잤고 눈물을 흘리며 작은 숨만 힘들게 내쉴 뿐이었다.
오줌을 싸기도 힘들었는지 배털에 오줌이 묻어서 진한 냄새가 배어있었다.
그런 녀석이 힘들게 돌아다니며 박스와 내 다리에 볼살을 비비며 채취를 남기고 낑낑거렸다.
퇴근길에 다이소에서 핫팩을 사 와 박스 안 담요 밑에 흔들어 넣어주었고 따뜻했는지 몸을 웅크린 채 잠들었다.
찬 기운이 가득하던 다음 날은 아주머니 집으로 들여서 재웠다.
어제 퇴근하고 집에 오니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똘이가 가버렸다고 했다.
나는 크게 놀람 없이 담담히 들었고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똘이는 그래도 아픈 몸으로 오래도록 살아주었다.
빌라 문 앞으로 나가니 고양이 박스는 치워진 채로 비어있었다.
레고 블록처럼 항상 붙박이로 박혀있었던 낡은 종이상자가 사라지니 비로소 쓸쓸함이 다가왔다.
그 전날 저녁 늦게 숨을 뱉은 채로 작고 말라 가벼운 몸을 벗어버렸다.
잊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똘이가 떠난 그날 밤 꿈에서 나와 혀로 손가락을 핥고 볼을 비비며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마지막 작별인사였나 보다.
건강하고 이쁜 모습으로 기억해 달라는 바람이었을까.
아직 투명하게 남아 빌라 앞 담벼락에 올라가 있을 것만 같다.
11월 17일 늦은 저녁, 고양이친구 똘이.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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