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제주명품 레드향 설선물

낮가림 2023. 1. 22.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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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과일까지 끌어당겨지나.





누군가 초인종을 누른다.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나가보신다.
나는 모르는 어머니의 지인께서 설선물을 들고 오셨다.
현관 앞에 놓고 간 보따리를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풀러 본다.
감춰진 보자기 사이로 설에 흔히 볼 법한 선물상자가 나왔다.
허나 박스에 새겨진 선물의 이름은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한쪽 끝에 귤사진이 우두커니 놓인 박스의 중앙에는 제주명품이라고 박혀있다.
박스의 또 다른 모서리에는 레드향이라고 적혀있다.
살면서 제주 레드향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기는 했지만 먹어본 기억은 나지 않는다.
또 보았어도 귤 종류가 참 다양한지라 레드향을 골라낼 수도 없었다.




이상한 기분에 박스를 열어보았다.
단순히 귤을 생각했는데 배처럼 큰 귤이 꽉 차게 들어있었다.
고급스럽다는 기운이 풍겨온다.
큰 귤이 이리도 이쁠 줄이야.
제주명품 제주 레드향이라...
이젠 과일까지 끌어당겨지나.
산지를 확인해 보니 제주특별자치도.




바다 건너 밀물을 타고 끌어당겨졌나 보다.
가만히 옛 기억의 데이터를 검색해 본다.
AI 스럽게 기억을 여기저기 쑤셔보니 살면서 그냥 귤박스를 선물 받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 제주가 딱 적힌 귤을 받은 경우는 없다.
이것 또한 우연이 아니리라.
겨우 귤 한 상자에 무슨 끌어당김이냐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 제주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는 것은, 내가 소환한 그 무언가가 계속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신호다.




접시 위에 귤껍질을 깐 레드향을 하나 올려놨더니 접시가 작아 보인다.
이것은 단지 귤일까?
내 눈에는 접시 위의 작은 제주로 보인다.
귤과육에 바짝 달라붙은 하얀 것을 귤락이라고 하는데 파도의 하얀 거품처럼 보였다.
반으로 잘라낸 레드향 속에는 오렌지빛 쌀알이 가득했다.
귤 한쪽을 떼어서 입에 물었다.
볼에 문 과육에서 단물과 단맛이 가득 배어 나왔다.
과육이 큰 만큼 단맛의 밀물도 크게 밀려왔다.
이 맛이 레드향이구나.
사람들이 자주 말하던 단맛의 근거가 방금 내 혀에서 맛으로 전해졌다.
말로만 듣는 것과 몸이 흡수한 경험은 비교하기엔 차원이 다르다.
난 이제 제주 레드향 맛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정작 제주에서는 귤을 먹어보지 못했다.
단지 청귤이 가득 달린 귤밭 숙소에서 지내던 날들이 있었을 뿐이다.
눈으로 보았을 뿐 입과 친해지지는 못했다.
하긴 먹기에는 너무 익지 않은 청귤이었다.
늘 여름휴가에만 제주로 건너갔기 때문이리라.
귤이 익는 12월의 겨울에 꼭 제주로 가보리라.
아니 여름에 가서 그대로 쭉 있으면 제주의 계절이 익어서 어느 날 시선을 돌렸을 때 귤도 익어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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