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제주에서 명상을 하자

낮가림 2022. 3.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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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에서 명상을 꿈꾼다.
숲과 동네를 산책하는 일도 좋지만 그냥 아무생각없이 하루의 반나절을 여유롭게 명상에만 쓰고 싶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곳 평상이나 의자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막지 않은 채로 흔들리며 그렇게 내 생각을 들여다보고 싶다.
그 작은 시간으로 깨어남을 바라는게 아니라 사적인 공간이 아닌 자연 앞에 개방된 공간에서 명상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바쁜 서울의 생활속에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시간을 채우려던 나는 시간을 비우는 방법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수많은 생각들이 항상 나의 삶에 간섭을 한다.
나는 그들 하나하나를 모두 반갑게 받아들이고 같이 망상에 빠져든다.
문제는 오늘 나를 찾아온 이들은 어제도 나를 찾았고 몇 달전에도 나를 찾았으며 몇 년전에도 주기적으로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내일도 먼 미래에도 나를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생각의 손님은 아주 가끔 방문하거나 발길을 끊었다.
생각도 습관처럼 같은 이들이 매일 찾아온다.
그들과 나눈 대화는 항상 똑같았으며 더 깊은 대화를 이끌어내거나 결말을 내지 못했다.
고인물처럼 같은 생각들로 머릿속은 썩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항상 제자리에 않아 매일 똑같은 이들의 방문을 지켜봐야하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행동하기로 했다.
그들이 오기 전에 담장을 넘어 새로운 이들을 먼저 찾아가기로 했다.
언제까지 그들이 먼저 찾아오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다.
호흡을 조절하고 아주 천천히 느리게 숨을 쉰다.
바람이 불어와 코로 내뱉은 숨을 훔쳐간다.
익숙한 이들이 머릿속으로 모인다.
그들과 대화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나는 그들을 밀치고 집밖으로 나갔다.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생각을 비우려해도 생각은 저절로 생겨났다.
내가 그들을 피해 달아나자 그들은 나를 쫒아왔다.
생각을 끊어낼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말자.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아무 생각도 하지말자고 머릿속으로 되뇌이며 힘겹게 몇시간을 텅 빈채로 보낸 새벽이 있었다.
우울한 날이었지만 진정 간절함으로 몇 시간동안 아무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음을 체험했다.
명상으로 이 체험을 더 오래 확장하고 싶었다.
중학생시절 집에서 벽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환상적인 체험을 기대한 적이 있었다.
기대했던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무언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어수선한 마음을 다잡는데 좋은 수단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그 후로 시간이 많이 흐르고 명상을 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 기회와 장소를 만들지 않았고 어쩌면 아주 많이 잊고 살았다.
명상이라는 것은 도인이나 종교인 또는 영적으로 각성한자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부터 명상과 관련된 영상들을 찾아보았고 수없이 많은 이들이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명상수련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꿈꾸었다.
그리고 지금은 각잡고 하는 명상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생각을 통제하며 내가 하는 행동을 관찰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아주 조금씩 난 생각의 관찰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나를 찾아 오는 생각들을 분류해서 같은 성향끼리 묶어버렸고, 매번 찾아오는 녀석들이니 미리 답을 준비해서 꺼내어 답해주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쓸데없는 시간 소모를 줄일 수 있었다.
알고보면 생각이란 것은 단순했다.
10년 전의 생각이 아직도 나를 찾아온다.
바꿔말하면 난 10년이 넘도록 그 생각의 해답을 내놓지 못하거나 실행하지 못한 것이다.
아... 단순한건 나였었구나.
그들은 고작 생각일뿐 내가 행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없는 존재들이다.

제주에 가면 바람부는 오름 위에서 갈대와 함께 이리저리 흔들리며 명상에 빠지고 싶다.
흔들려야 내 마음이 부러지지 않는다.
바람을 이기려고 버티고 싶지는 않다.
어서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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