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제주의 풍경

낮가림 2022. 1. 2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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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햇살에 눈이 자연스럽게 떠진다.
상체를 침대에서 일으킴과 동시에 온몸의 근육을 조금씩 풀어준다.
2층에서 1층으로 나무계단을 내려가며 주위를 둘러본다.
오름처럼 보이는 언덕사이로 뿌연 안개가 가득하다.
커피포트의 물을 끓이고 커피 한잔을 만들어 낸다.
식탁 위에는 따뜻한 커피의 수증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난 홀린 듯이 밖의 풍경에 멍하니 시선을 빼앗긴다.


거실 구석에선 함께 여행을 온 친구가 몸이 아파 끙끙거리고 있다.
전날 숙소의 야외 자꾸지에서 물놀이를 즐기더니 몸살에 걸린 모양이다.


두통약 하나를 건네주고 다시 낯선 풍경에 시선을 맡긴다.
생각해보니 전날 동네를 모험했을 때 약국은 발견되지 않았고 보건소도 문이 닫혀있었다.
비상약을 챙겨오지 않았다면 친구는 하루 종일 두통과 몸살로 고생했을 것이다.
이 작은 에피소드에도 제주살이의 준비성이 느껴졌다.
그래.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준비해야 해.



서울로 돌아오고 나서도 난 제주의 삶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몇 개월 동안 유튜브 영상도 보고 자료를 찾아봤지만 정답은 가까이 있었다.
그만 쳐다보고 그만 듣고 움직여라.
그래. 살면서 이루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용기 내어 크게 움직인 적이 없었다.
내 삶의 노력과 희생은 대부분 타인을 위한 것이었다.
일단 계획을 세워야 한다.
머릿속의 생각과 고민을 글로 적어놔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설계해야 한다.



해 저무는 어둔 빛이 오렌지색 광선을 내 눈에 쏘아댄다.
난 생각을 멈추고 온몸의 근육을 조금씩 풀어준다.
이제 움직여야지.
머리에서 가슴으로 따뜻한 기운이 계단을 타듯이 내려간다.
콘크리트 빌라들 사이로 저무는 해가 보이고 어둠이 몰려왔다.
스마트폰을 들고 구글 킵 메모 앱을 실행시킨다.
머릿속 시야를 가리는 안개가 걷히고 난 홀린 듯이 적어 나가는 글자의 풍경에 멍하니 시선을 빼앗긴다.

해가 진 밤에 해가 뜨는 아침을 생각한다.
다시 보고 싶다.
그날 아침 그 제주의 풍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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