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제주에 간다고 말하자

낮가림 2022. 4. 19.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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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를 켜라



하루 종일 말을 잘하지 않는다.
마치 언어를 모르는 아이처럼 산다.
나의 목소리는 반드시 말이 필요한 상황에서만 나온다.
누군가와 소리를 내어 말을 섞는다는 것은 타인의 하루와 감정을 나에게 끌어들이는 것이다.
몰랐던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귀와 눈으로 들리고 보인다.
내 감정만으로도 벅찬데 다른 이의 감정을 짐처럼 쌓아놓는 다.
가장 밑에 눌린 나의 감정은 무게에 짓눌려 쉽게 꺼내어 보기도 힘들다.
말과 말이 섞이며 그들의 감정이 나에게 전이된다.
삶에 대한 하소연이나 가벼운 농담거리가 내 머릿속에 들어온다.




내가 타인과 나누는 대화도 한없이 가벼운 이야기라 말풍선처럼 머리 위로 둥둥 뜰 정도이다.
나는 말을 하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으며 되려 상상만으로도 풍부한 만족감을 느낀다.
대화의 단절은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난 처음 누구를 만나든 일부러 말을 잘하는 가공된 캐릭터를 불러오지 않는다.
말을 아낌으로써 조용한 사람이구나 라는 인식을 갖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얻어지는 내 시간이 많아지고 타인의 고뇌에 동참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바로 그날, 그 순간 나와 마주한 수많은 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으며 이해한다는 동조의 한마디를 듣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상대방에게 문과 창문을 모두 닫아버린 사람이었다.

내가 하는 고민과 상대방의 고민이 같았을 수도 있다.
서로 대화했다면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끼리 다양한 의견을 내어줄 수도 있었다.
한 달짜리 고민이 한 시간의 대화로 해결될 수도 있었다.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었다면 짐작이 아닌 사실 그대로를 알게 되고 오해는 생기지 않는다.
나보다 더 잘 요약된 인생지도를 가진이에게 길을 물어봤다면 난 이미 제주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나의 생각을 혀에 담아 올리고 상대와 나의 빈 공간에 띄운다.
내 말을 들었다면 반드시 대답해 줄 것이다.
앞으로는 말을 많이 하지는 않더라도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
말을 아껴도 너무 아끼고 살았다.
이제 나의 생각을 나누어 주며 살고 싶다.




친구들과 아무렇지 않게 시답지 않은 농담거리를 말하던 때가 생각난다.
점점 인생 최악의 고비를 맞으면서 난 스스로 문을 닫아버리고 소리가 나오는 마이크를 꺼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마이크를 켜고 살려한다.
블로그도 그래서 하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고.
지독한 제주병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떠들기 위해.
시끄러워도 이해해 달라.
누구나 살면서 이럴 때가 있으니까.

아직 친구인 그 외에는 아무에게도 제주로 간다는 말을 먼저 꺼낸 적이 없다.
이제는 더 많은 지인이나 사람들에게 제주로 간다고 말하고 싶다.
안 가면 창피해서 산속에 숨어 살아야 할 것처럼 소리치고 싶다.
이젠 조용히 있고 싶지 않다.
말은 아껴야 하지만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다.
오늘도 이렇게 글을 핑계 삼아 자기반성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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