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B급 영화가 좋다.
내가 사랑하는 구독 서비스 넷플릭스 주가가 침몰하고 있다.
내가 넷플릭스를 구독한지는 거의 6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나름 초창기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었다.
우편으로 DVD를 대여해주던 작은 회사는 스트리밍 구독 서비스의 공룡이 된다.
초창기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로 눈길을 사로잡았고 그 외의 오리지널 콘텐츠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했다.
나도 초반에는 정말 매일 열심히 봤었다.
사람들이 넷플릭스 볼 게 없어라고 말할 때도 나는 정말 열심히 봤었다.
그만큼 나는 영화와 드라마를 사랑하는 팬이었고 넷플릭스는 영상으로 가득 찬 커다란 비디오 가게였다.
내가 어렸을 적 동네에 비디오 가게가 6곳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비디오 플레이어를 사서 빌려본 비디오가 동방불패로 기억한다.
작은 아날로그 브라운관 TV에서 상영되는 홍콩 무협영화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자주 읽었던 무협소설의 존재들이 정말로 날아다니고 칼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정말 많은 비디오들을 빌려봤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 해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용돈처럼 생기는 몇천 원을 가지고 비디오 가게로 갔다.
한편에 2,000원 정도 하던 대여료는 경쟁업체가 많아지자 500원까지 내려갔었다.
그럼 나는 1,000원으로 두 편의 비디오를 대여할 수가 있었다.
나는 오전 일찍부터 가장 큰 비디오 가게에 들어갔고, 마치 책을 읽듯이 비디오가 봉인된 비디오 케이스를 정독했다.
영화의 제목과 주연배우의 이름이 인쇄된 앞면 그리고 전체 줄거리와 핵심 대사를 박아 넣은 뒷면을 난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난 정말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비디오를 골랐고 나만의 취향을 찾기 시작했다.
공포영화가 진열된 칸에서 나는 주로 오래 머물렀고 실제로도 공포영화를 많이 빌려본 걸로 기억한다.
일주일 내내 나는 꼭 하루에 두 편씩 빌려서 연이어 두 편을 가장 밝은 낮시간대에 시청했다.
빛이 아스라이 쏟아지는 커다란 창 밑에 TV가 놓여있고 전형적인 금발 캐릭터가 무시무시한 커다란 가위나 전기톱을 든 괴물에게 쫓긴다.
눈이 풀린 좀비들이 사람의 살을 찾아 방황한다.
난 B급 영화들에 열광하는 B급 인생이었다.
또래 친구들이 대학을 가고 일찍 취업을 하거나 군대를 갔다.
하지만 난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을 비디오광으로 보내고 있었다.
내가 영화를 미치도록 좋아한 이유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다.
학교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은 채로 나를 졸업시켰다.
그 이후 비디오 속에서 수많은 직업을 봤고 수없이 빛나는 인생들과 세드 앤딩을 봤다.
공포영화는 대부분 살인마가 마지막에 다시 무덤을 뚫고 살아나는 결말이었다.
참 재밌었다.
아주 다양한 장르를 골고루 시청했고 어느 날은 카운터에 앉아계시던 사장님이 어떤 영화를 찾는데 본인이 못 찾겠다고 하셔서 내가 즉시 손가락으로 집어준 적이 많았다.
나는 정말 서점에 온 것처럼 모든 비디오를 쭉 읽어봤고 매일 오면서도 처음 온 사람처럼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시간이 흘러 비디오 대여료가 정말 몇 백 원으로 떨어지자 매장의 반은 도서대여점으로 운영하는 짬뽕가게들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그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고 비디오 가게는 결국 사라졌다.
잠시나마 DVD 대여점이 생겨서 구경을 갔지만 볼 수 있는 플레이어가 없었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다운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방법과 습관에 익숙해져 있을 때 넷플릭스가 나타났다.
많은 구독자들이 퇴근 후에 넷플릭스에 들어가 영화나 드라마를 고르다가 나온다고 말했다.
사실은 볼 게 없다고.
나는 옛 시절 비디오 가게에서 천천히 케이스를 읽어가며 영화를 고르던 추억이 생각나서 영화의 제목과 줄거리를 읽는 행위가 너무 좋았다.
지금은 자주 들어가지는 않지만 나는 넷플릭스를 좋아한다.
넷플릭스 경영진의 실책으로 주가는 계속 하향하고 있다.
사람들이 기웃기웃 거리는 썸 내일과 제목이 아닌 진짜 볼 만한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야만 한다.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제국의 마지막 영광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넷플릭스 때문에 기억나지 않던 비디오 가게들 이야기가 되살아 났다.
그 시절 우리들의 시간을 행복하게 했던 비디오 가게처럼 넷플릭스도 오래오래 살아남았으면 한다.
디즈니, 아마존, 애플, HBO 등 많은 OTT들이 왕좌를 노리고 있지만 아직 내 입맛엔 넷플릭스가 맛집이다.
아 주식은 한주도 없다.
동네의 비디오 가게는 먼지처럼 사라졌지만 내가 서울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것처럼 제주로 옮겨가도 넷플릭스는 똑같이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사랑한다.
제주로 가면 일하느라 보지 못한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찾아보고 싶다.
마치 그 시절의 나처럼 하루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싶다.
잠시 쉬어가며 새로운 콘텐츠들을 보고 듣고 감정으로 체험하고 싶다.
제주에서 넷플릭스의 라이벌이라면 드넓은 자연 이리라.
나는 콘텐츠와 자연 모두 사랑한다.
어린 시절 비디오 키드는 이렇게 나이만 먹은 어른이 되었다.
아직 B급 영화의 주인공 같은 삶이지만 그래서 좋다.
어쨌든 주인공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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