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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와 푸켓

사람은 이동한다 내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았던 하늘은 푸켓으로 가는 경로였다. 생애 첫 비행이라 들뜬 마음이 가득했고, 서른 후반에 서울을 벗어나 첫 외국으로 가는 여행이었다. 저녁에 출발해서 새벽에 도착하는 꽤나 긴 비행시간이었다. 좁은 좌석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두 끼 정도를 먹은 걸로 기억한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 이 무거운 쇳덩어리가 새의 모습으로 하늘을 날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낯설었다. 가족과 함께 도착한 푸켓공항은 새벽임에도 사람들이 가득했고 난생처음으로 외국인들로 둘러싸인 이상한 세계에 발을 디딘느낌이었다. 긴장과 함께 심사대를 통과하고 가족과 같이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는 말도 안 되게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서울의 밤과는 비교 안되게 어두운 느낌이었다. 우리 가족을 마중 나온 ..

제주로 가는 독서

어떤 책을 보시나요? 며칠 책을 안 읽었더니 책이 고팠나 보다. 유튜브 구독 채널에서 소개해주는 책들을 알라딘에서 검색해보고 그동안 찜해둔 몇 권의 책과 함께 구매했다. 제주도로 떠나기 위한 여정에 생각이 팔려있어서 유튜브로 보는 영상도 대부분 경제적 지식에 관한 내용과 제주소식이다. 영상에서 소개해주는 책들은 한 번씩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저장한 후에 구매할 책이 몇 권 쌓이면 모아서 주문을 한다. 여러 권을 구매하면 쿠폰을 쓸 수도 있고 적립금도 쌓이며 알라딘에서 만든 도서용 굿즈도 싸게 구매를 할 수 있는 이득이 있다. 파이어(FIRE)는 퀀트 투자로 유명한 강환국 저자님이 조기 은퇴를 선언하고 경제적 자유를 이룬 파이어족 20명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이 분을 알게 된 건 유튜브 경제채널들이다. ..

제주에 간다고 말하자

마이크를 켜라 하루 종일 말을 잘하지 않는다. 마치 언어를 모르는 아이처럼 산다. 나의 목소리는 반드시 말이 필요한 상황에서만 나온다. 누군가와 소리를 내어 말을 섞는다는 것은 타인의 하루와 감정을 나에게 끌어들이는 것이다. 몰랐던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귀와 눈으로 들리고 보인다. 내 감정만으로도 벅찬데 다른 이의 감정을 짐처럼 쌓아놓는 다. 가장 밑에 눌린 나의 감정은 무게에 짓눌려 쉽게 꺼내어 보기도 힘들다. 말과 말이 섞이며 그들의 감정이 나에게 전이된다. 삶에 대한 하소연이나 가벼운 농담거리가 내 머릿속에 들어온다. 내가 타인과 나누는 대화도 한없이 가벼운 이야기라 말풍선처럼 머리 위로 둥둥 뜰 정도이다. 나는 말을 하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으며 되려 상상만으로도 풍부한 만족감을 느낀다. 대화의..

나의 의식은 제주에 있다

졸음이 쏟아지는 하루의 끝, 나는 어디에 있는가? 열심히 글을 썼다. 그리고 잠시 눈꺼풀이 감겼을 때 엄지는 백스페이스를 누르고 있었고 눈을 뜨니 글이 지워져 있었다. 어떤 글을 썼는지 자세히 기억이 안 난다. 많이 피곤한 하루였나 보다. 아주 잠시 나는 현실과 잠의 세계를 왔다 갔다 했다. 지워진 글은 살릴 수 없지만 나는 마음이 요동치지 않는다. 전혀 아쉽지 않다. 지워질 글이라서 지워진 것이다. 오늘은 이렇게 지워졌지만 다음번에 다시 내 글 속으로 찾아올지도 모른다. 더욱 성숙한 문장으로. 지금도 눈을 감을까 말까 하는 유혹이 느껴진다. 잠은 달고 글은 쓰다. 하루 종일 혹사당하고 쉬어야 할 뇌는 글 때문에 다시 굴러가야 한다. 뇌가 구르지 않으면 글이 나오지 않는다. 시간은 10시가 다 되어간다...

제주를 쫓느라 서울을 잊었다

일요일 아침. 원래대로라면 토요일까지 일한 피로를 덜기 위해 오전 내내 잠을 잔다. 그러나 웬일인지 일찍 잠이 깨었다. 정신이 맑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베지밀 에이 두유를 마시면서 어항 속 공기방울 소리를 듣는다. 그동안 물고기가 존재했다는 것도 잊은 채 관심을 끄고 살았다. 자기 계발과 명상, 주식, 브랜딩, 부업, 창업에 관한 책과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보느라 집안의 다른 존재에 대해선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구피들이 계속 새끼를 낳았고 지금은 어항을 가득 채웠다. 예전에는 구피가 새끼를 낳으면 은신처를 마련해주고 작은 통으로 멸치보다 작은 아이들을 하나씩 잡아 새끼들만 살 수 있는 미니어항에 넣어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시간이 흐르자..

제주 타이머

제주로 이주해 살게 된다면 서울의 집에서 가져가야 할 나의 물건들이 있다. 그것이 단순히 짐이라면 다 서울에서 정리해서 버리고 가겠지만 손으로 항상 만지고 눈으로 확인하는 물건들이다. 제주집(제주집이라고 말하니 설렌다)에서 살게 되면 최소한의 물건과 인테리어를 한 채로 비워진 공간에 음악을 크게 틀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래서 몇 장 안되지만 그동안 모아놓은 LP판들을 가지고 갈 생각이다. 정작 현재는 LP판을 재생시킬 수 있는 턴테이블이 없다. 그런 상황이라 한 번도 재생을 못했다. 아쉽지만 제주집에서는 꼭 음악이 담긴 LP판을 플레이시키고 싶다. 턴테이블도 맘에 드는 것으로 사야지. 그 외에도 꽤나 모아둔 음악 CD들과 몇 권의 책들, 작은 소품과 옷가지 정도. 소품 중에 하나가 타이머다. 예전에 한..

퇴사하면 제주로 간다

오늘은 월급날이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토스 앱을 누르고 통장에 입금된 월급을 확인했다. 남은 현금을 확인하고 주식에 얼마를 넣을 수 있는지 가늠해봤다. 퇴근길에 은행에 들러 ATM님의 몸에서 돈을 뽑았다. 손으로 만져지는 아날로그 화폐를 소중히 주머니에 넣은 뒤 집에 계신 부모님에게 생활비로 드렸다. 씻고 나와 라면 물을 올리고 유튜브 영상을 찾아봤다. 회사를 나온 퇴사자들의 생존에 관한 인터뷰였다. 그들은 회사가 정한 틀이 아닌 자신이 세운 기준으로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을 찾아서 했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든 이도 있었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기업과 협업을 하거나 같은 생각을 하는 구성원끼리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재미난 삶을 살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성장하기까지 많은 난관과 두려움이 있었..

제주는 나의 구멍을 메꿔줄 것이다

새벽부터 빗소리가 들렸다. 자다 깨어 냉수 한 잔으로 목마름을 채우고, 잠시 귀 기울이다 기분 좋은 감정으로 다시 잠이 들었다. 몇 시간 후 우산을 쓰며 출근길을 나섰고 비가 고인 길 위를 걸어야 했다. 일터에 도착했을 때는 양말과 신발이 모두 젖어있었다. 양말 뒤꿈치에는 작은 구멍이 나있었다. 젖은 신발도 밑창에 구멍이 나서 많이 축축했다. 다행히 예비용 신발이 있어서 갈아신었다. 기분 나쁜 축축함이 사라졌다 나는 사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양말에 구멍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기에 다른 양말을 찾을 여유 없이 그대로 신고 나왔다. 그리고 신발 밑창에 구멍이 났다는 것도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자다 깬 새벽 두발과 맞닿는 지면이 물에 젖어있음을 짧은 순간이나마 인지했다. 그럼에도 나는 구멍..

에어컨이 숨 쉬는 계절에는 제주로 가야한다

오늘은 날이 꽤나 더웠다. 초여름의 습함을 경험했다. 예상치 못한 뜨거운 날씨 앞에서 모두가 힘이 빠져버렸다. 내 마음속에서는 어서 모든 걸 정리하고 제주로 떠나가고 싶은 욕망이 일어났다.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서 차가운 커피 한 잔을 하고 싶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고 눈을 감은 채로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나는 삶을 바꾸고 싶었다. 걱정이다. 걱정하면 안되는데 걱정이다. 우리 집엔 에어컨이 없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 집엔 에어컨이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을 부채와 선풍기로 살아왔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매년 덥다고 하면서도 암묵적인 룰인지 부모형제 그 누구도 에어컨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기록적인 더위를 기록했던 오래전 여름의 어느 새벽엔 자다가 깬 적이 ..

제주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제주를 배경으로 삶을 풀어내는 드라마가 나왔다. tvN 드라마인데 넷플릭스에 오늘 확인해보니 1, 2화가 올라와 있다. 제주를 떠나 도시에서 살던 한수라는 인물이 다시 고향 제주로 내려가면서 이제는 성인이 돼버린 동창 친구들과 만나며 일어나는 이야기다. 이병헌, 차승원, 한지민, 신민아, 김우빈, 김혜자, 고두심, 이정은, 엄정화 배우님등 유명 배우분들이 많이 등장하는 드라마다. 이중 고두심 배우님은 고향이 제주도라서 더 잘 맞는 캐스팅이 아닐까 싶다. 각 회차가 주요 인물 몇 명의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옴니버스식 구조다. 첫 화는 차승원, 이정은 배우님들의 이야기였다. 기대한 만큼 연기도 좋았고 제주도의 배경 또한 아름다웠다. 제주사투리를 그대로 대사에 옮겨서 표준어로 자막이 나오는 것이 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