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279

내가 제주로 가는 건 비밀이다

내가 제주로 가는 건 비밀이다. 친구인 그 외에는 가족이나 주변 지인 그 누구도 모른다. 심지어 제주도 모르고 있다. 조심히 비밀스럽게 마흔이 넘은 어느 날부터 아무도 모르게 일탈을 꿈꾸고 계획 중이다. 사람이 사는 장소와 환경을 바꾼다는 건 거의 모든 걸 바꾸는 거라 생각한다. 지금은 예측할 수 없지만 내가 딱히 애쓰지 않아도 생길 무의식적인 습관도 만들어질 것이고 타지에서 온 이방인이 갖게 되는 방어기제도 생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만큼 제주를 이해하고 편견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제주에 대한 많은 지식을 습득하려 노력 중이다. 또한 왜 제주에 정착했다가 다시 돌아오는지도 자세히 알아보려 한다. 모든 걱정되는 고민거리에 대한 계획을 다 세워놨을 때 정말 어느 날 아무 걱정 없이 짐을 싸서..

제주 인간극장 송당나무 카페

2020년 여름, 그와 나는 송당리로 휴가를 왔고 이른 아침에 산책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고요함. 뻥 뚫린 도로. 지나다니는 차들은 보이지 않는다. 전형적인 제주 구옥들이 모여진 동네의 모습이 아기자기하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산책하기 좋은 날씨다. 송당리 큰 길가로 나온 후 어디로 갈지 잠시 고민한다. 어차피 동네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물어볼 동네 주민들도 안 보인다. 이 시간에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가게는 한 군데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큰 도로를 건너 직진하기로 한다. 햇살은 뜨겁고 그늘은 누가 지워버린 것처럼 길가에 희미하게 누워있다. 이 넓고 푸른 공간에 오직 그와 나 둘만 있다. 모험이 시작됐다. 물이 바짝 마르고 풀들만 길게 자란 수로의 제방 위에 올라 걷는다. 오랜만에 만..

내 활주로는 제주로

내 활주로는 제주로 카테고리에 25개 이상의 제주에 관련된 내 신비한 경험담과 가상의 미래 그리고 제주에 대한 생각들을 담아내었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의 예상보다 부지런하게 글을 쓴 것 같다. 심지어 일하면서도 무엇을 써야 할까 고민하는 나를 발견한다. 더불어 뒷목이 뻣뻣해지고 아프다. 심적인 부담감이 몸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직은 습관이 아닌 숙제로 여겨지나 보다. 하지만 오직 나만이 풀 수 있는 숙제이고 정해진 답은 없다. 어쨌든 제주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키워드 조합을 포기하고 내 맘대로 제목을 짓고 글을 썼었는데 의외로 키워드 검색으로 많이들 들어와 주셨다. 게다가 첫 번째 글로 노출되는 포스팅들도 있어서 내가 생각한 대로 쭉 가도 괜찮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아직 한 달도 안됐고 누적된 글..

나의 제주는 청춘인가?

나는 청춘인가? 내가 보는 기준이 다르고 주위에서 나를 보는 기준이 다르다. 나름 나이에 맞지 않게 동안이고 한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다니는 건강한 몸이라 주위에서는 내 나이를 10살 이상 차이 나게 본다. 그리고 아직 결혼도 안했고 자유로운 몸이어서 청춘이라고 보시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이 질문의 답은 청춘이 아니다 이다. 조금 삐긋해도 몸이 아프고 예전처럼 유연하지 않으며 무릎과 손목이 아파온다. 흰머리도 꽤 많이 보인다. 얼굴에도 조금씩 주름이 보이는 것 같다. 피부는 탱탱함이 사라졌고 눈도 약간 풀린듯하다. 육체적인 부분만 아니라 내적인 면에서도 푸르른 청춘은 지나갔다. 더 이상 새로운 생각과 시각은 생기지 않았고 어른의 기준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마흔이 넘어서 젊은이의 젊음과 행..

나의 목적지? 물론 제주다.

요새 유튜브로 자주 찾아보는 구독 채널이 있다. 그림 그리는 유튜버 이연님이다.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와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그림을 그리면서 들려주신다. 오래전 영상에 제주도로 휴가를 가셔서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영상이 있었다. 그 책중에 하나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저자가 자신의 문학과 인생을 달리기에 비유해서 풀어놓은 책이다. 빨리 달리기로 책의 내용은 지나가고, 나를 멈추게 한 구간이 있었다. 이연님이 이 부분은 그냥 멋있어서 밑줄 쳤다는 문장이 있다. '나는 나의 목적지를 향해서 계속 달린다. 나의 목적지? 물론 뉴욕이다.' 이연님의 밑줄 표현처럼 정말 개간지다. 자신의 목적을 한마디로 정의했다. '물론 뉴욕이다.' 뉴욕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제주에 가면 행복이 있을까?

"제주에 가면 행복이 있다고 믿니?" 그가 톡으로 물어본다. 머릿속에 사라지지 않고 계속 떠오르는 그 말. 제주에 가면 행복이 있다고 난 믿고 있는 걸까? 행복해지고 싶어서 제주에 가려하는 걸까? 서울에서의 행복과 제주에서의 행복은 차이가 있는 걸까? 내가 원하는 행복이 무엇일까? 행복하고 안하고의 기준이 무엇인가? 딱히 정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기에 천천히 풀어가 보려 한다. 다만 지금이라고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나의 밥벌이에 만족하고 일상 속 소소함을 기반으로 작은 행복들이 하루를 조금씩 채워간다. 하지만 짜증이 날 때도 있고 여유가 없어서 시간에 쫓기듯 사는 날도 많다. 행복은 샌드위치처럼 짜증과 무관심, 우울, 평범 그 사이에 겹겹이 채워져 있는 것이다. 모든 감정들이 맛이 다 다르고 나도 ..

제주에 아는 사람 있어?

제주에 아는 사람 있어? 나에게 하는 질문이다. 제주에 아는 사람? 당연히 없다. 휴가 때 내려가 묵었던 펜션의 주인들이 아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동문시장에서 매번 들렸던 올레 횟집의 삼촌이 아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자주 들렸던 앞오름돼지촌 사장님 부부가 아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제주에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데 내려가서 살려한다.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돌담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아는 사람은 없지만 아는 회맛은 있으며 아는 오름이 있고 아는 한라산 소주 맛이 있다.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난 당장 그에게 제주에 내려가서 정착하고 싶으니 맘에 드는 집을 찾을 때까지 잠시 머물게 해달라고 부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눈치 보며 밥을 얻어먹고 집을 알아본다는 핑계로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며 이제 뭐..

제주에서

작은 알람 소리가 귀를 통해 들어온다. 살짝 눈을 뜸과 동시에 손을 뻗어 시계의 알람을 끈다. 아직 바깥은 살짝 어둡다. 해가 떠서 밝아지려면 아직 한 시간 정도가 남았다. 내가 아끼는 촛대 모양의 조명을 켜고 어질러진 이불을 간단히 개어서 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제주에 내려와서 매일 거르지 않고 행하는 새벽의 의식이다. 집 담장 주변을 바람이 떠나지 않고 계속 창가를 향해서 휘파람을 분다. 내가 자길 좋아한다는 걸 아나보다. 매번 동네를 지날 때마다 고양이가 집 앞에서 소리를 내듯이 머물다가 떠난다. 기분 좋은 바람소리가 사라지면 감상을 끝내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간다. 발끝으로 무게를 옮길 때마다 중력이 아래로 이동한다. 차가운 나무계단의 온도가 아직 덜 깨어있는 나의 의식에 찬물을 붓는다. 1층의 공..

피곤해도 제주

방금 전자책을 보다가 살짝 졸았다. 타이탄의 도구라는 책이다. 책이 졸린 게 아니라 내 몸이 피곤하여 눈꺼풀이 내려간 것이다. 지금은 졸음의 주문에서 깨기 위해 견과류를 씹고 있다. 글쓰기 중 가장 어려운 때가 바로 지금 같은 경우다. 몸은 피곤하고 쓸 글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써야 한다. 나와의 약속이다. 내일 발행될 글은 이미 어제 예약해놨다.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여전히 글쓰기는 어렵다. 더 어려운 건 오직 글만을 쓰기 위해 집중하는 시간이다.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습관이 되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을 써 내려가야 한다. 제주라는 목표를 향해 티스토리 블로그를 만들었다. 이 작고 볼품없는 공간에 매일 하나의 포스팅이라도 발행하여 살을 붙이려 한다. 이러한 내 ..

제주 라면

작년 말 크리스마스이브 날 아침 그는 갑자기 제주도로 떠났다. 김포에서 제주까지 왕복 항공권이 이브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저렴한 가격으로 나온 것이다. 나는 일을 하는 중에 카톡으로 연락을 받은 것이라 그가 너무 부러웠다. 아무 계획이나 예고도 없이 가고 싶을 때 떠나는 그의 즉흥성이 나에게는 큰 배움이었다. 난 그런 실행력이 없다. 여러 가지를 따지고 재봐야 하는 인생이었다. 코로나 이후 제주 항공권은 성수기 비성수기 구분할 것 없이 가격이 올라버렸다. 저렴한 가격의 항공권이 올라오면 언제나 그는 떠났다. 당일이든 몇 박이든 미리 정해두지 않았다. 숙소도 그 날 가서 잡는 식이었다. 자유로운 제주 여행가인 그는 제주의 관광지로 유명한 대부분의 지역을 둘러봤다. 그는 나에게 질투의 대상이었다. 매번 그가..